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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1월 학생 항일운동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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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휴먼아카데미 댓글 0건 작성일 20-11-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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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일제가 태평양 전쟁으로 군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던 시기에 한국 학생들과 일제 학생들과의 군사교육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학생항일운동이였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격 등, 당시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고자 일제가 국가 총 동원령을 발동하고, 학생들을 유사시에 전쟁터로 끌고 가기 위한 준 군사훈련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1940년 11월 21일, 22일 이틀간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의 총지휘하에 일본인 학생들과 한국인 학생으로 분류하여 군사훈련을 적대적으로 구분하여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차별대우를 받던 한국인 학생들은 나라를 뺏긴 설움과 더불어 민족 차별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오르게 하였다.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 위주로 군사대항 연습위주로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인 학생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불을 뿜는 민족자존, 민족긍지의 투지로 경쟁하여 이겼으나, 노다이의 편파 판정으로 일본인 학생 승리로 인정하자 한국인 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한국인 학생들은 폐회식 참가를 거부하였고, 일제 국기 하강식때 일제 국가 대신 우리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불렀고, 노다이 죽어라! 왜놈 죽어라! 절규와 고함은 더욱 고조되었고 마침내 한국 학생들은 나라잃은 설움과 차별, 일제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일본인을 향한 함성과 투석등을 시작으로 항일 전쟁터로 되어 버린 사건이다.


시가지 행진시 조선독립 만세! 일본놈 죽여라! 무엇이 내선일체냐! 무엇이 동아시아의 맹주냐!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1,000여명의 학생들이 가두 행진을 하면서 당시 금지곡이었던 황성옛터, 아리랑, 도라지타령, 쾌지나 칭칭 등 우리 민요를 합장하면서 가두행진을 하였다. 

그것을 본 일본 상가들은 문을 닫았고 조선의 피가 끓고 있던 우리네 기와집과 초가집들은 불을 밝히고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을 향해 눈시울을 적시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정의와 민족 정신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위대한 절규가 부산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후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이 시작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옥고를 치룬 사건이다. 이때 한국인 학생들의 평균 나이가 17세에서 18세 나이였다.


2020년 11월 지금의 시대에도 역사를 왜곡하고 혐한 감정으로 일관하는 일본정치인들과 극우세력들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표어가 있다. 


역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역술인의 말을 인용하면 "왜구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음을 주장했고 그냥 떠들게 놔두면 제 풀에 지쳐 망해 버린다는 것"이다.


유력언론사 출신의 모 언론인의 말을 인용하면 "몇몇 언론사들이 추측 기사 및 일본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는 것은 반 민족적 행위이며, 반 사회적 행위임을 주장했고, 언제인가는 그 언론사들은 사라져 버릴 것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기상은 날로 높아져 갈 것이다. 아직까지 일제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세력은 잘 들어야 되는 부분이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라!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애국심과 민족을 사랑하는 그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끝까지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더불어 일본 여행 금지에 동참함으로써 1940년 11월에 있었던 학생 항일 운동의 정신을 이어 갈 것이다. 



월남전에 참전해서 고엽제 휴유증으로 고통받는 박모씨(77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젊은이들 만세!  

젊은이들아 너무 고맙다!! 








(근대역사관 기록물 참조)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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